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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News

AI 시대 한국의 선택 (패스트팔로우, 제조업, 피지컬AI)

by 뭉치뉴스 2026. 4. 1.

저는 김대식 교수의 강연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22년 11월 ChatGPT가 등장한 지 겨우 3년이 채 안 됐는데, 제 주변 사람들은 이미 AI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더군요. 더 충격적이었던 건 "벤치마킹할 곳이 없다"는 그의 진단이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우리가 선진국 모델을 따라가며 압축 성장을 이뤘다면, AI 시대에는 그 어떤 나라도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현실이 와닿았습니다.

 

AI 시대 한국의 선택
AI시대 한국의 선택

 

패스트팔로우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

제가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얼마 전 회사에서 AI 도입 방안을 논의할 때, 한 임원분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김대식 교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선진 사례를 찾지만, AI 분야에서는 그런 벤치마킹 대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한국이 산업화 시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첫째, 중공업 같은 전통 산업은 기술 발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습니다. 둘째, 세계화 시대였기에 선진국들이 기술 이전과 시장 개방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셋째, 우리 부모 세대는 주당 150시간도 일하는 헝그리 정신으로 격차를 메웠습니다(출처: 한국경제연구원).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작동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패스트팔로우(Fast Follow)란 선도 기업의 혁신을 빠르게 모방하여 시장에 후발 진입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남이 만든 답안지를 보고 시험 보는 방식이죠. 그런데 AI는 한 달에 한 번씩, 때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모델이 나오며 기술 변화 속도가 중공업 대비 수십 배 빠릅니다. 게다가 2025년부터 본격화된 '각자도생' 시대에는 선진국들이 기술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GPU 수출을 외교 카드로 활용하고, 중국은 희토류로 압박하는 시대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깊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엔비디아 황젠슨 CEO가 한국에 와서 GPU 26만 장 공급 계약을 체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GPU는 자동차 엔진과 같습니다. 엔진만 100개 있다고 해서 차가 달릴 수 없듯이, GPU만으로는 AI 서비스를 만들 수 없습니다. 데이터센터 구축에 수십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고, 원자력 발전소 2기 이상의 전력이 필요합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한국에 그만한 AI 서비스 수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조업 숙련공이 피지컬AI 시대의 열쇠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동안 제조업은 한국 경제의 낡은 유산처럼 취급받았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서비스업으로 전환했고,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죠. 그런데 김대식 교수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제조업을 유지해온 것이 AI 시대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피지컬AI(Physical AI)란 물리적 형태를 가진 AI, 즉 로봇이나 자율주행차처럼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AI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ChatGPT처럼 화면 안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물건을 잡고 조립하고 움직이는 AI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피지컬AI를 학습시키려면 '움직임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ChatGPT는 인터넷에 올라온 텍스트로 학습했지만, 로봇은 인터넷에 없는 '숙련된 움직임'을 배워야 합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대목은 이겁니다. 테슬라는 옵티머스 로봇을 학습시키기 위해 키 173cm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로봇 시점에서 동작을 반복 촬영합니다. 하지만 일반 아르바이트생이 용접, 나사 조립, 정밀 가공 같은 제조업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반면 한국에는 울산, 창원, 거제에 수십 년간 현장에서 일한 베테랑 숙련공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제조업이 거의 사라져 숙련공 자체가 없습니다. 코로나19 때 마스크 공장조차 없어서 중국에 의존했던 게 미국과 유럽의 현실입니다(출처: 산업연구원). 반면 한국은 반도체부터 조선, 자동차, 심지어 종이빨대 공장까지 다양한 제조업이 살아 있습니다. 이 숙련공들의 움직임을 VR 고글로 촬영해 데이터화하면, 그것이 바로 한국만의 독점적 AI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저는 이 전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시간이 문제입니다. 숙련공들이 은퇴하기 전에 그들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데이터로 전환해야 합니다. 여기서 암묵지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감으로 아는 것", "손에 익은 기술"을 뜻하죠. 이런 암묵지는 매뉴얼로 전수할 수 없기에 직접 보고 배워야 하는데, AI 시대에는 이것을 영상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피지컬AI 데이터 확보 전략의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울산·창원 등 제조업 클러스터의 숙련공 동작 데이터베이스 구축
  • VR/AR 장비를 활용한 실시간 작업 동선 및 미세 동작 캡처
  • 용접, 조립, 가공 등 산업별 특화 데이터 암호화 및 전략적 비공개
  • 데이터 기반 로봇 학습 모델 개발 및 글로벌 라이선싱 전략

제 경험상 이런 방향 전환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를 먼저 묻고, 정부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5년이 결정적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한국은 AI 시대의 영구적인 후발주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대식 교수는 애플, 메타 같은 빅테크 중 절반은 5년 내 몰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애플은 하드웨어 디자인에 강했지만 AI 기술력이 약하고, 메타는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AI 서비스가 부족합니다. 오히려 한국처럼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나라가 피지컬AI 시대에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벤치마킹할 곳이 없다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먼저 움직이는 자가 승자가 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3oIL71er4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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