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우리 일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뉴스를 보기 전까지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유가 뉴스는 늘 있었고, 중동 분쟁도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냥 흘려보내게 됐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일본 유조선 한 척이 통행료 한 푼 안 내고 봉쇄를 뚫었다는 소식, 그리고 우리 선박 26척은 아직도 묶여 있다는 현실이 동시에 들어오는 순간, 국제 정세가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일방적 승전 선언과 해상 봉쇄의 계산법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전에서 일방적 승전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미 정보기관이 해당 시나리오에 대한 이란의 반응을 사전 분석 중이라는 내용인데, 로이터 통신이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의 요청으로 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출처: Reuters).
여기서 제가 주목한 건 타이밍입니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유력한데, 저도 이 시각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실제로 전쟁 장기화는 유권자에게 부담이고, 일방적 선언이라는 형식을 취하면 실질적인 종전 협상 없이도 철수 명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봉쇄를 오히려 강화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CENTCOM이란 미국 중부사령부(United States Central Command)를 뜻하며, 중동·중앙아시아 지역 군사 작전을 총괄하는 통합전투사령부입니다. 항공모함과 헬기를 동원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상선을 수색하는 영상을 공개했고, 이란의 차바하르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이 봉쇄 이전의 하루 5척 수준에서 현재 20척 이상으로 늘었다는 수치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이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면 꽤 묵직합니다. 정박 선박이 4배 이상 늘었다는 건 이란의 수출 길이 그만큼 막혔다는 뜻이고, 경제적 타격이 상당하다는 방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이란이 붕괴 상태"라고 언급한 것도, 외교적 협상 전에 상대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압박 전술로 읽힙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가 장기적 해상 봉쇄를 보좌진에게 지시했다고도 합니다. 이란의 핵 포기를 강요하기 위해 경제적 숨통을 계속 조이겠다는 전략인데, 저는 이 지점에서 오히려 우려가 생겼습니다. 승전 선언을 검토하면서도 봉쇄는 강화하는 이 이중적 행보가 출구 없는 장기전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봉쇄 국면에서 주목할 구조적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혁명수비대의 배럴당 1달러 통행료 징수 시도
- 이란 차바하르 항구 정박 선박 4배 이상 급증 (하루 5척 → 20척 이상)
- 아랍에미리트(UAE)의 OPEC 및 OPEC+ 전격 탈퇴 선언
- 일본 유조선 이데미스 마루호의 통행료 없이 봉쇄 통과 성공
여기서 OPEC+란 석유수출국기구(OPEC) 12개국에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 10개국이 더해진 확대 동맹체를 말합니다. 전 세계 석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좌우하는 카르텔인데, UAE의 탈퇴는 이 구조 자체를 흔드는 사건입니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에 이은 OPEC 3위 산유국인 만큼, 탈퇴 이후 생산량 의무에서 자유로워진 UAE가 증산에 나설 경우 국제 유가 하락 압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맥락에서입니다.
73년 전 우정이 봉쇄를 뚫은 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일본 정유사 이데미쓰코산의 자회사 소유 유조선 이데미스 마루호가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전쟁 발발 61일 만에, 일본 기업 소유의 100% 일본 국적 유조선이 빠져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가 이 소식에 멈추게 된 건 단순한 물류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통행료는 0원이었습니다. 혁명수비대가 배럴당 1달러를 요구했다는 정황이 있었고, 200만 배럴이면 약 2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7억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일체 지불하지 않았다"고 직접 밝혔고, 이를 외교 성과로 자평했습니다. 단순히 돈을 아꼈다는 게 아니라, 돈 없이도 통과시킬 수 있는 신뢰 관계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신뢰의 뿌리는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란은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고, 영국이 이에 반발해 페르시아만 봉쇄에 나섰습니다. 이 봉쇄를 뚫고 이란 원유를 비밀리에 실어 나른 것이 바로 이데미쓰코산의 유조선 니쇼마루호였습니다. 이란 주재 일본 대사관은 오늘 이 사진을 공개하며 "양국 간 오랜 우정의 증거"라고 강조했습니다. 73년 전의 행동이 2025년의 외교 자산이 된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외교의 시간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본이 이번에 성과를 낸 것은 다카이치 총리의 전화 회담, 모테기 외무상의 추가 요청 같은 단기 협상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쌓인 신뢰가 결정적인 순간에 작동한 것입니다.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란 단순히 공급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그 루트를 열어줄 관계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임을 이번 사례가 보여줬다고 봅니다. 에너지 안보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며, 단기 가격 변동보다 장기 공급 안정성이 핵심입니다.
우리나라도 외교부 특사를 직접 이란에 파견했고, 외무장관 간 전화 통화도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특사를 이란에 직접 보낸 나라는 사실상 우리가 유일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26척이 여전히 묶여 있다는 현실은, 외교적 노력의 양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가 결과를 만든다는 냉정한 교훈을 남깁니다(출처: 외교부).
지나치게 위기 프레임만 강조하는 보도 방식이 아쉽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호르무즈 봉쇄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일본의 사례처럼 위기 속에서 작동한 구조적 해법을 함께 짚어줘야 시청자가 실질적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공포감만 남기는 보도는 결국 무력감만 키웁니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 공급망(Supply Chain)의 취약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에너지 공급망이란 원유 채굴부터 운송, 정제, 소비까지 이어지는 전체 연결 고리를 말하며, 어느 한 지점이 막히면 연쇄적으로 영향이 퍼집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한국에게 이 봉쇄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기 대응과 함께, 일본처럼 수십 년을 내다보는 외교 자산을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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