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산업은행을 그냥 '큰 기업들 돈 대주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HMM이나 대우조선해양 같은 거대 기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뉴스에서 이름이 등장했고, 그때마다 '국가가 뒤를 봐주는 은행이니 괜찮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수치를 들여다보고 나서, 그 안이한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게 됐습니다. 대손상각비가 단 1년 사이에 229% 급증했다는 사실은, 이게 단순한 경기 침체 탓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손상각비 229% 폭증, 숫자가 말하는 것
산업은행의 2024년 대손상각비는 8,376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2023년의 2,544억 원과 비교하면 약 3.29배, 229%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여기서 대손상각비란, 은행이 기업에 빌려준 돈을 더 이상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장부에서 손실로 처리할 때 발생하는 비용입니다. 쉽게 말해 '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공식 선언하는 셈이고, 그 규모가 1년 만에 이렇게 불어났다는 건 부실의 깊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은행 대출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데, 서류 한 장 빠져도 반려가 되고 하루 연체에도 신용등급 경고가 날아오는 게 일반 시민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조 단위의 기업 부실이 이렇게 쌓였다는 사실을 보면, 솔직히 씁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리스크 관리가 개인에게는 철저하고 대기업에는 관대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더 눈여겨볼 지표는 고정이하여신 비율입니다. 고정이하여신 비율이란 전체 대출 중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건전성 지표입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은행이 떠안은 부실의 비중이 크다는 의미인데, 산업은행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0.78%로, 전년 대비 0.18%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금액으로는 1조 5,435억 원에 달합니다.
여기서 비교가 뼈아픕니다. 같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은 전체 여신의 83%가 중소기업 대출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오히려 0.06%포인트 줄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기업 연체율은 0.19%인 반면 중소기업 연체율은 0.92%로 약 다섯 배 차이가 납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대기업 대출이 주력인 산업은행의 건전성이, 중소기업 대출 중심의 기업은행보다 오히려 나빠졌다는 건 리스크 관리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산업은행의 현황을 숫자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24년 대손상각비: 8,376억 원 (전년 대비 229% 증가)
- 고정이하여신 비율: 0.78% (전년 대비 0.18%포인트 상승)
- 고정이하여신 금액: 1조 5,435억 원
- 중소기업 대출 비중: 18.48%
- 대손충당금 적립률: 239.59% (전년 대비 35.84%포인트 하락)
리스크 관리와 국책은행의 정체성
이 문제를 두고 "산업은행이 정책적 역할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이나 산업 지원이라는 공적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수익성보다 정책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죠. 저도 그 논리 자체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과거 해운·조선 위기 때 산업은행이 없었다면 더 큰 혼란이 왔을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239.59%로, 1년 전보다 35.84%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대손충당금 적립률이란 향후 부실이 터졌을 때를 대비해 미리 쌓아둔 완충 자금의 비율을 나타냅니다. 이 수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앞으로 위기가 왔을 때 버틸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장은 버티고 있어도, 경기 침체가 깊어지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이 수치를 보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도 바로 이 점입니다. 산업은행의 자본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 뒷배를 서고 있는 구조입니다. 부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면, 그 손실은 어떤 형태로든 국민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기업부실과 금융기관 건전성 간의 연결 고리를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중소기업 대출 비중 문제입니다. 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18.48%에 불과합니다. 국책은행으로서 혁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실제 여신 구조는 여전히 대기업 중심에 머물러 있습니다. 더 낮은 위험을 택하면서도 건전성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는 점에서, 리스크 관리 시스템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문제는 수치가 한 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반전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신 포트폴리오(대출 자산의 구성 분포)가 특정 대형 기업에 집중될수록, 그 기업 하나가 흔들릴 때 충격이 고스란히 전이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이 반복된다면,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계속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건전성을 지키려면, 지원의 조건과 출구 전략을 보다 엄격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투명성은, 국민이 요구할 권리가 있는 부분입니다.
산업은행의 이번 수치가 일시적인 것인지, 구조적인 문제의 시작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손충당금 적립률 하락과 고정이하여신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일시적 부진'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솔직한 판단입니다. 국책은행의 건전성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인 만큼, 산업은행의 여신 관리 동향을 계속해서 주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산업은행이 분기별로 공시하는 경영공시 자료를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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